태초의 우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주의 팽창이 거역할 수 없는 대세가 되자 몇몇 천문학자들은 최초의 순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은하들이 서로 멀어져가는 과정을 거꾸로 되돌린다고 가정하면 우주의 시작 지점까지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우주 팽창의 기록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138억 년 전 빅뱅이라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이제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정설이 되었지만, 과연 어떻게 빅뱅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하는 데는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1980년대에 미국의 알렉산더 빌렌킨과 스티븐 호킹이 발표한 이론으로, 우주는 '무(無)에서 탄생했다'는 주장이다. 양자 요동에 의해 극미한 공간에 물질이 무한대의 밀도로 응축된 원자, 곧 특이점이 나타났고, 이것이 대폭발을 일으켜 오늘의 우주가 되기까지 팽창을 거듭해 왔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빅뱅은 이미 존재하던 3차원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한 평범한 폭발이 아니다. 폭발과 더불어 시간과 공간이 사실상 창조되었음을 뜻한다. 빅뱅과 더불어 창조된 물질과 에너지는 지금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를 가득 채운 은하와 별들로 진화했다.
폭발이 일어나기 전, 즉 138억 년 전에는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아무것도 없었다. 변화가 없는 곳에는 시간 자체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시간 역시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같은 시간의 개념을 이미 1500년 전에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다. 초기 기독교 철학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가 한 신자로부터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전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고는 "너같이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잡아 가둘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라는 독설을 퍼부었다는데. 그것은 말 많은 신도들의 입을 막기 위해 질 나쁜 성직자들이 지어낸 얘기일 뿐이고, 실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천지가 창조됨으로써 비로소 시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이란 말은 의미가 없다.“
이 말은 현대 우주론의 시간관과 다를 게 없다는 면에서 참으로 놀라운 예지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우주론자들은 그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답변한다. "빅뱅과 함께 시간과 공간이 탄생했으므로, 그런 질문은 성립되지 않는다. 북극점에서 북쪽이 어디냐고 묻는 것이나 같다."
빅뱅이 일어난 직후 초고온의 아기 우주는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의 우주론자 앨런 구스(1947~)가 제창한 이른바 인플레이션(급팽창) 이론인데, 우주 초기의 어떤 순간에 우주가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팽창했다는 가설이다.
이것은 빅뱅 속에서 극히 짧은 순간인 10-36~10-32초로, 이 짧은 시간 동안 시공간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하여 우주의 크기는 양성자보다 훨씬 작은 크기에서 1043배 이상 커졌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어떤 것도 빛보다 빨리 운동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는 공간 자체가 팽창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이 해당되지 않는다.
우주가 팽창하지만, 은하들이 스스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 팽창은 공간 자체가 팽창하는 것이기 때문에 은하간 공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은하들은 늘어나는 우주의 카펫을 타고 서로 멀어져가고 있는 셈이다.
풍선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한결 쉽다. 풍선 위에 무수한 점들을 찍어놓고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는다고 치자. 풍선이 무한대로 부풀어간다면 그 표면에 찍힌 점들은 서로에게서 무한히 멀어져갈 것이다. 우주의 팽창이 3차원적으로는 이와 같다.
오늘날에도 천문학자들이 은하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완전히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빅뱅 직후 급팽창을 하는 동안 균일하던 우주에 물질이나 복사 분포의 아주 작은 불균일성에서 은하의 씨앗이 태어나 그것이 진화해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불균일성은 우주의 생성 초기에 존재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했을 때 완전히 평탄하고 균일했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에는 은하나 별 그리고 다양한 화학원소도 없었을 것이고, 행성이나 생명체도 생겨날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우주의 건더기라고 할 수 있는 별이나 성간물질, 은하 등이 생겨날 수 없어 우주는 여전히 맹탕인 채로 있었을 것이란 뜻이다.
그러나 현재의 우주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수많은 별과 은하들이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고, 서로 충돌하거나 폭발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별들이 탄생하는 등 천변만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역동적인 우주인 것이다. 그러므로 최초의 팽창 국면에 별과 은하의 씨앗이 될 만한 불균일성이 반드시 있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펜지어스와 윌슨이 찾아낸 우주배경복사의 균일한 등방성 속에서 미세한 불균일성의 증거를 찾아내야 했다. 이를 위해서 보다 세밀하게 우주배경복사를 뒤져볼 필요가 있었다. 1970년대 초반의 관측은 100분의 1 차이까지 불균일성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방향에 따른 파장의 차이는 관측되지 않았다. 이것이 정상 우주론자들에게 빌미가 되어 처음부터 그러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빅뱅 우주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우주배경복사 속의 100분의 1 이하 불균형 찾기, 이것이 천문학계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변동을 지상관측으로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기가 희박한 대기권 상층으로 올라가서 관측해야 했다.
이 연구에 열정적이었던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조지 스무트(1945~)는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대기권 밖에서 관측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NASA에 인공위성을 이용한 우주배경복사 프로젝트를 제안함으로써 우주배경복사 탐사선 코비(COBE: Cosmic Microwave Background Exp!orer)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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