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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이야기

우리나라의 태양중심설 전래과정

by hangilkor-info 2025. 2. 1.

우리나라의 태양중심설 전래과정

 

우리나라의 태양중심설 전래과정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전설(地轉說)을 주장한 한자는 김석문(金錫文, 1658-1735)이다. 그는 1697년에 자신이 편찬한 『역학이십사도총해(易學二十四圖總解)』에 태양,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상대적인 크기를 제시하고,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 자전하면서 일 년에 총 36번의 회전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태양 주위를 행성들이 공전하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설명했는데. 이것은 티코의 행성계에서 볼 수 있는 구조다. 그는 처음에는 중국 성리학을 기초로 천문 현상을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청나라에서 활동했던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 자크 로(Jacques Rho, 1593-1638)의 『오위역지(五緯曆指)를 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 책은 프톨레마이오스와 티코의 이론들을 수록하고 있었는데, 김석문은 티코의 행성계를 더욱 신뢰했다. 그러나 티코가 지구의 자전을 거부했다는 점에 찬성하지 않고, 낮과 밤은 분명히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하지만 김석문의 이런 주장은 자신이 천체들을 직접 관측한 결과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단지 서양 천문학 이론들을 분석해서 나온 결과일 뿐이었다.
 
 
  그 후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열하일기(熱河日記)』중 「곡정필담(鵠汀筆談)」에서 지전설과 관련된 내용이 다시 등장한다. 박지원이 청나라를 방문했을 때(1780년 정조 4년), 그가 중국의 왕민호(王民皥)와 필담(筆談)을 나누는 과정에서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지전설(地轉說)을 언급하게 되는데, 이 필담 중에 홍대용의 지전설과 서양의 지전설을 비교하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박지원은 홍대용이 지전설을 독창적으로 창안했다는 의미로 설명하면서. '서양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전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 것 같은데. 자신의 벗인 홍대용은 이미 예전에 지구의 자전을 제안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1766년에 홍대용은 북경에서 서양 선교사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 일본의 중국과학사학자 야부우치 기요시는 홍대용이 그 당시 서양 선교사들로부터 지전설에 대한 정보를 이미 들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1968년에 논문을 통해 발표한 바가 있다.
 
 
  홍대용의 문집에는 당시 서양 선교사들과 나눈 대화들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서양 선교사들이 지전설을 언급하긴 했으나 옳은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게다가 정황상으로 볼 때, 교황청의 입장을 대변하던, 그것도 갈릴레이를 가장 선봉에 서 공격했었던 예수회(jesuit) 소속 선교사들이(내심 지전설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했을지라도) 당시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던 태양중심설의 기본 원칙인 지전설이 옳은 가설이라고 당당히 홍대용의 견해에 힘을 실어 주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홍대용은 대화체 문답식으로 기술한 『의산문답(毉山問答)』을 통해 낮과 밤은 땅이 회전하면서 생긴다는 지전설(地轉說)과 해와 달 속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우주인설(宇宙人設), 그리고 무한우주론(無限宇宙論)을 제안했다. 이에 덧붙여 가볍고 빠른 천체는 자전과 공전을 함께 할 수 있는 반면, 지구는 무겁고 느린 것이라 자전은 가능하지만 공전은 불가능하다고 피력했다. 홍대용이 서양 과학의 중요성을 크게 깨닫고 그것을 수용하고 발전시키려 했던 최초의 조선인이라고 할지라도, 지전설을 처음 제안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 기록으로 남긴 학자는 김석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홍대용의 『의산문답』에서 설명하고 있는 천체들의 운동 방식 역시 티코의 행성계와 동일한데, 이것은 김석문의 『역학이십사도총해』에서 소개되는 내용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홍대용은 『오위역지(五緯歷指)』의 내용에 찬동하면서도 지전설만큼은 옳은 것이라고 결론 내렸던 것이다.
 
 
  한편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 도는 것이 무수히 많은 천체들을 포함하고 있는 무한한 우주가 지구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것보다 더욱 이치에 합당하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문구는 우연하게도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제1권에서 소개되는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결론적으로 홍대용이 설명하고 있는 지전설의 일부 요소 및 행성들의 위치와 공전에 관한 내용들은 자신이 중국에 들렸을 때, 서양 천문학을 접하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17~19세기 조선의 학자들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서양인들과의 긴밀한 접촉을 통해 선진 과학을 수용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중국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중국인의 손을 한번 거친 자료를 통해 서양 학문을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조선의 분위기는 그만큼 열악했다. 우리나라에서 구체적인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이해와 수용은 하는 수 없이 대한제국 시대까지 기다려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