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천문학 등장 시기의 기독교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중세 가톨릭교회 당국의 권위는 막강한 것이었는데, 교황을 비롯한 추기경들의 권세는 국경이 존재하지 않았다. 교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당국의 영향력이 발휘되었다.
중세 말에 접어들자 본연의 신앙으로부터 벗어나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했다. 당시 추기경들은 세력을 규합하여 당파를 이루었고, 교황은 선출되자마자 자신의 옹호 세력을 키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무엇보다 절실했던 것은 자금(資金)이었고, 자금 확보를 위해 시행된 조치들은 갖가지 폐단을 가져왔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악폐가 면죄부였다. 시골 지역의 성직자들이 농민들에게 면죄부를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들을 구원할 면죄부를 교황청으로부터 구입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도 발생했다.
15세기 중엽에 이르러 금속활자의 혁신을 통해 인쇄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출판물이 다량으로 쏟아지기 시작하자 이제는 글을 배우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한편으로 항해술이 발달하여 먼 곳에 있는 나라들과의 교역이 확대되면서 자신들이 기도하며 제례를 모시는 유일신이 아닌 이단의 수괴(首魁)를 따르는 사람들의 문명이 기독교 문명보다 훨씬 더 발달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독교가 여러 선(善) 들 중 하나일 뿐, 유일한 (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기면서 반(反) 신앙적 조짐이 발생하자 교회 당국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러한 사태의 연속은 교회 당국의 권위를 급속히 실추시켰다. 이에 교회 당국은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들에게 때로는 타협으로 때로는 위협으로 대처했는데, 급기야 15세기 초부터 '마녀사냥'이라는 캠페인을 벌여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올바른 신앙의 길을 탐색하던 여러 성직자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대학 부속 교회당 정문에 '95개조(個條)'를 내걸고 가톨릭교회 당국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면서 교회가 올바른 신앙으로 돌아가야 함을 주장했다. 처음에는 단지 항의(抗議) 표명 정도가 목적이었으나, 사태가 일파만파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에 루터는 '구원을 받기 위해 교황을 반드시 인정할 필요는 없다'는 기치(旗幟) 아래 추종 세력을 규합하여 가톨릭교회와 대치하게 된다. 가톨릭교회 당국과 프로테스탄트 세력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교리만이 성서의 올바른 해석임을 주장하며 상대 세력에 대해 모든 이해나 관용을 베풀려고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두 세력은 각기 다른 종파로 분기되었다.
결국 1555년에 이르러 아우크스부르크 조약(Augsburger Religionsfiede) 을 통해'그 지역 종교는 그 지역 통치자가 결정한다(cuis regio, eius religio)'는 내용이 결의되었다. 그러나 긴장은 수십 년간 지속되다 결국 1618년에 종교전쟁이 발발하고 말았다. 30년 동안의 길고 길었던 이 전쟁은 1648년에 베스트팔렌 조약(Westfalischer Friede)이 체결됨으로써 종결되는 이것 역시 아우크스부르크 조약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프로테스탄트는 다양한 계파로 나뉘었는데, 그들 간의 세력 경쟁도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16~17세기 교회 당국 및 신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태양중심설이 옳은 것임을 진정 알고 있었으면서 억지로 그 사실을 부정하려 했던 게 아니었다. 그들은 분명 코페르니쿠스 이론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실체를 알고서도 진실을 감추려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교리(敎理)를 '과학'이 아닌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과 관련해. 그들이 비록 무지(無知)했을지언정 불순(不純)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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