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텅 비어 있지 않다
츠비키의 대발견
1929년,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경천동지의 사실을 허블이 발표한 후, 천문학 발달사에 또 하나의 큰 분수령을 이루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우주 안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암흑물질이 존재한다는 주장이었다.
우주론 역사상 가장 기이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주장은 스위스 출신 물리학자인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의 프리츠 츠비키(1898-1974) 교수가 "정체불명의 물질이 우주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고 발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33년에 머리털자리 은하단에 있는 은하들의 운동을 관측하던 츠비키는 그 은하들이 뉴턴의 중력법칙에 따르지 않고 예상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은하단 중심 둘레를 공전하는 은하들의 속도가 너무 빨라, 눈에 보이는 머리털 은하단 질량의 중력만으로는 이 은하들의 운동을 붙잡아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속도라면 은하들은 대거 튕겨 나가고 은하단은 해체돼야 했다.
여기서 츠비키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개별 은하들의 빠른 운동속도에도 불구하고 머리털자리 은하단이 해체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틀림없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이 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내용이었다. 머리털자리 은하단이 현 상태를 유지하려면 암흑물질의 양이 보이는 물질량 보다 7배나 많아야 한다는 계산도 나왔다. 그러니 주류 천문학계의 아웃사이더였던 츠비키의 주장은 간단히 무시되었고, 세월과 함께 묻힌 채 잊혔다.
그로부터 80년이 흐른 후의 상황은 어떠한가? 전세는 대역전되었다. 암흑물질이 우리 우주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데 반기를 드는 학자들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최신 성과가 말해주는 암흑물질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우주 안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은하나 별 등의 물질은 단 4%에 불과하고, 나머지 96%는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다. 그중 암흑물질이 22%이고, 암흑 에너지는 74%를 차지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허블의 팽창 우주에 버금갈 만한 우주의 놀라운 현황일지도 모른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암흑물질의 정체
오래 잊혔던 암흑물질이 다시 무대 위로 오른 것은 한 세대가 지난 1962년, 이번에는 여성 천문학자에 의해서였다. 베라 루빈(1928~2016)은 1950년대 애리조나에 있는 키트피크 천문대에서 은하 내 별들의 회전속도를 측정하면서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발견했다. 은하 중심부에 가까운 낼들이나 멀리 떨어진 별들의 공전속도가 거의 비슷하게 측정됐던 것이다.
이것은 케플러의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건이었다. 이 법칙에 따르면, 바깥쪽 별들의 속도가 당연히 한참 느린 것으로 나와야 한다. 태양 둘레를 도는 행성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초당 공전속도를 보면, 수성은 47km, 지구는 30km, 해왕성은 수성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5km다. 만약 해왕성이 수성의 속도로 공전한다면 진작 태양계를 탈출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은하는 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가? 이미 한 세대 전 츠비키가 가졌던 의문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루빈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학계에서 묵살당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여자라는 성별이 문제가 되었다. 남녀차별은 천문학 동네의 뿌리 깊은 관습이었다. 그러나 루빈은 츠비키와는 달리 때늦었지만 보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뒤인 1994년, 암흑물질 연구에 관한 공로로 미국 천문학회가 주는 최고상인 헨리 러셀(H-R도표를 만든 천문학자)상을 받았던 것이다.
암흑물질의 존재를 가장 극적으로 증명한 것은 바로 중력렌즈 현상의 발견이었다. 빛이 중력에 의해 휘어져 진행한다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에 의해 예측되었고, 1919년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의 일식 관측으로 증명되었다(58쪽 참조). 질량이 큰 천체는 주위의 시공간을 구부러지게 해서 빛의 경로를 휘게 함으로써 렌즈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를 일컬어 중력렌즈 현상이라 한다. 이 중력렌즈를 통해 보면, 은하 뒤에 숨어 있는 별이나 은하의 상을 볼 수 있다.
이제 암흑물질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굳어졌고, 문제는 암흑물질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그 정체성으로 옮겨갔다. 암흑물질의 성분은 과연 무엇인가? 이것만 안다면, 다음 노벨상은 예약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그 정체 규명에 투신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뚜렷한 단서를 못 잡고 있다. 어쨌든 우주 총질량의 26%나 차지하는 암흑물질의 정체가 아직 오리무중이라는 것은 과학자들에겐 참으로 갑갑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우주배경복사와 암흑물질 연구에서 선구적 역할을 하는 것은 윌킨슨 초단파 비등방 탐사선(WMAP)이다. 이 위성은 2002년부터 몇 차례에 걸쳐 매우 정밀한 우주배경복사 지도를 작성해왔다. 이 관측에 의해,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의 물질은 4%에 지나지 않음이 밝혀졌다. 더욱이 4% 중 대부분은 수소와 헬륨이 차지하고 있으며, 0.4% 만이 은하와 별을 만들고, 우리 지구에서 흔히 보는 무거운 원소는 0.03%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구는 참으로 특이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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