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정체
교수가 된 유리 연마공
뉴턴의 물리학이 등장한 후 사람들은 지상의 물리학이 천상의 세계에도 그대로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태양과 천체들은 지구 물질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더 이상 효력을 가질 수 없었다. 천문학자들은 태양의 크기와 거리를 측량했고, 만유인력 방정식으로 그 질량을 알아냈다. 자그마치 지구 질량의 130만 배였다.
여기서 당연한 의문이 제기된다. 태양을 이루고 있는 물질은 무엇일까? 무엇이 저렇게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가? 만유인력의 법칙이 우주의 모든 천체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손 치더라도, 그것만으로 이들이 모두 똑같은 기본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듯이 보였다. 직접 그 천체의 일부를 채취해 와서 화학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1835년, 프랑스의 실증주의 철학자 콩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밝혀진 모든 것을 가지고 풀려고 해도 절대 해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가 있다. 그것은 별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철학자는 좀 신중하지 못했다. '절대 해명할 수 없다'라는 말은 참 위험한 말이다. 콩트가 죽은 지 2년 만인 1859년, 독일 물리학자 구스타프 키르히호프(1824~1887)가 태양광 스펙트럼 연구를 통해, 태양이 나트륨, 마그네슘, 철, 칼슘, 동, 아연과 같은 매우 평범한 원소들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이 '빛'의 연구를 통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의 물체까지도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키르히호프의 스펙트럼을 얘기하기 전에 어느 불우한 유리 연마공의 인생 이야기에 잠시 귀 기울여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 무학의 유리 연마공이 이미 한 세대 전에 키르히호프의 길을 닦아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요제프 프라운호퍼(1787~1826)다.
무학의 유리공 출신인 프라운호퍼는 1806년 열아홉 살 때 한 기계 연구소에 광학기사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망원경 제작에 투입되어 질 좋은 렌즈 제작에 전념했다. 당시 광학은 뉴턴 시대보다 진보되었으나, 질 좋은 색지움 렌즈는 여전히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다.
광학과 수학을 독학으로 공부하여 빛의 회절현상을 처음으로 연구해 빛의 파장을 계산해낸 프라운호퍼는 스펙트럼의 색들이 유리의 종류에 따라 어떻게 굴절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망원경 앞에 프리즘을 달았다. 말하자면 역사상 최초의 분광기를 만들었던 것이었다.
이 실험에서 프리운호퍼는 그의 이름을 불멸의 것으로 만든 놀라운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희미한 수직의 선들이 스펙트럼 안에 보인다. 이중 몇 개는 아주 검게 보였다.”
그는 태양 이외의 천체에 대해서도 스펙트럼 조사를 했다. 달과 금성, 화성을 분광기에 넣었을 때도 똑같은 선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망원경을 항성으로 겨누었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별마다 각기 특유의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는 햇빛 스펙트럼의 세밀한 조사를 통해 모두 324개의 검은 선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프라운호퍼선 또는 흡수선이라 불리는 것이다. 프라운호퍼는 이 선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끝내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저 천상의 세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밝혀낼 수 있는 열쇠로서, 19세기 천문학상 최대의 발견이었다. 프라운호퍼의 암선이 뜻하는 것은 그로부터 한 세대 뒤 키르히호프에 의해 완벽하게 해독되었다.
프라운호퍼는 눈부신 업적으로 나중에 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고, 민헨 대학의 교수까지 했지만. 그의 불운은 끝나지 않았다. 불우한 환경 탓에 어렸을 때부터 봄이 허약한 데다 평생 유리를 다루며 생활하는 바람에 유리가루가 폐에 차서 병상에 눕게 되었다. 그해 6월 요양을 위해 이탈리아로 떠날 준비를 하던 중에 병세가 위독해져 결국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39세였다.
그러나 천문학 발전에 끼친 공적으로 볼 때 프라운호퍼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거인이었다. 그는 프라운호퍼선으로 우주를 인류 앞에 활짝 열어놓았다. 후세의 천문학자들은 이 프라운호퍼선을 도구로 하여 우주의 화학조성을 해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그는 우리를 별에 더 가깝게 이끌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태양을 해부한 과학자
'별의 물질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한 콩트의 말을 보기 좋게 뒤집은 구스타프 키르히호프는 칸트가 태어난 지 꼭 100년 만인 1824년 칸트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쾨니히스베르크 알베르투스 대학에서 전기회로를 연구하고, 졸업 후 베를린 대학 강사 등을 거쳐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로 갔다.
거기서 키르히호프는 화학자 로베르트 분젠과 함께 여러 가지 원소의 스펙트럼 속에 나타나는 프라운호퍼선의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유황이나 마그네슘 등의 원소를 묻힌 백금 막대를 분젠 버너 불꽃 속에 넣을 때 생기는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는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키르히호프는 각각의 원소는 고유의 프라운호퍼선을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말하자면 원소의 지문을 박혀낸 셈이었다.
이어서 그에게 영광의 순간이 찾아왔다. 나트륨 증기가 내보내는 빛을 분광기에 통과시키니, 그 스펙트럼 안에 두 개의 밝은 선이 나타났다. 프라운호퍼가 제작한 지도와 대조해 보니 그 선들이 D1, D2의 장소와 일치했다. 그것은 프라운호퍼가 나트륨 화합물을 태웠을 때 발견한 두 개의 밝은 선에 붙여놓은 기호들이었다.
여기서 키르히호프는 그의 선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나트륨 불꽃을 통하여 태양 빛을 분광기에 넣었더니 스펙트럼 안의 밝은 선이 있었던 장소가 어두운 D선으로 바뀌는 게 아닌가! 이는 어떤 특정한 파장의 빛이 나트륨 가스에 흡수되어 버렸음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D선은 태양 주위에 나트륨 가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해냈다!"고 외쳤다. 이것이 바로 반세기 전 프라운호퍼가 그토록 알고 싶어한 수수께끼였던 것이다.
키르히호프는 다음 과제로, 태양광 스펙트럼에서 보이는 검은 선들이 어떤 윈소들의 것인가를 조사한 결과, 마그네슘, 철, 칼슘, 동, 아연 같은 원소들을 찾아냈다. 콩트가 죽은 후 2년 뒤인 1859년, 그는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이로써 키르히호프는 태양을 최초로 해부한 사람이 되었고, 항성 물리학의 기초를 놓은 과학자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태양이 무엇을 태워 그렇게 막대한 에너지를 분출하는지 그 에너지원이 밝혀지기까지는 아직 한 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다.
여담이지만, 키르히호프가 이용하는 은행의 지점장이 자기 고객이 태양에 존재하는 원소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한마디 내뱉었다고 한다. "태양에 아무리 금이 많다 하더라도 지구에 가지고 오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훗날 키르히호프가 분광학 연구 업적으로 대영제국으로부터 메달과 파운드 금화를 상금으로 받게 되자 그것을 지점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옛소. 태양에서 가져온 금이오.'
'천문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의 운명 (1) | 2025.03.04 |
---|---|
별들의 일생 도표 (0) | 2025.03.03 |
혜성 (0) | 2025.02.20 |
태양계 식구 운석 (0) | 2025.02.19 |
해왕성이란 무엇인가? (0) | 2025.02.17 |
천왕성과 음악가 (0) | 2025.02.16 |
천문학자와 토성 (0) | 2025.02.15 |
목성이란 무엇인가? (0) | 2025.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