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
우주에는 그 규모나 내용면에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천체 현상 중 최고의 장관은 밤하늘의 혜성일 것이다.
어떤 혜성의 기다란 꼬리는 태양에서 지구까지 거리의 2배나 되며, 그 주기가 수십만 년을 헤아리는 것도 있다 하니,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다. 혜성이 남기고 간 부스러기라 할 수 있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어온 우리에겐 입이 딱 벌어질 스케일이라 하겠다.
태양계의 방랑자, 혜성은 태양이나 큰 질량의 행성을 중심 삼아 타원이나 포물선 궤도를 도는 작은 천체를 말한다. 우리말로는 살별이라고 한다. 혜성(彗星)의 한자 '혜(慧)'는 '빗자루'라는 뜻이다. 옛사람들은 혜성을 빗자루별이라 불렀다.
빛나는 머리와 긴 꼬리를 가지고 밤하늘을 운행하는 혜성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측해왔다. 연대가 확실한 가장 오랜 혜성 관측 기록으로는 기원전 1059년 중국에서 "주나라 때 빗자루별이 동쪽에서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유럽에서는 기원전 467년 그리스 사람들이 혜성 기록을 남겼다. 그리스어로 혜성을 코멧(Komet)이라 하는데, 이는 머리털을 뜻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동서양이 모두 혜성에 대해서는 공통된 관념 하나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혜성 출현이 불길한 징조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양의 죽음이나 나라의 멸망, 큰 화재, 전쟁, 돌림병 등 재앙을 불러오는 별이라고 믿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에서는 특히 화성을 반란이나 쿠데타의 정초로 보았다. 혜성이 흰빛을 띠면 장군이 역모를 일으키고, 꼬리가 길고 클수록 재앙이 크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동서양의 고대인에게 혜성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혜성이 천체와는 관계없는 일종의 '현상'이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혜성의 출현도 지구 대기상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혜성이 지구 대기층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천체의 일종임을 최초로 밝혀낸 사람은 16세기 덴마크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1546~1601)였다. 그리고 혜성이 태양계의 식구임을 밝혀낸 사람은 17세기 영국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1656~1742)였다.
1682년 어느 날 핼리는 혜성을 본 후, 너무나 신기한 나머지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옛날 혜성 기록을 뒤져 연구해본 결과, 혜성은 불길한 일을 예시하는 별이 아니라, 76년을 주기로 지구 주위를 타원궤도로 도는 천체임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 주기에 따라 1758년 다시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핼리의 추측이 맞다면, 1682년 밤 인류에게 엄청난 흥분을 불러일으킨 혜성은 다음에는 1758년 말이나 1759년 초에 돌아올 것이었다.
핼리는 자신의 예언이 맞았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86세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 예언은 정말로 맞아들었다! 1758년 천문학계는 혜성에 대한 기대와 홍분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이윽고 혜성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며 접근해왔다. 하늘에 나타난 '혜성의 귀환'을 맨 먼저 본 사람은 천문학자가 아니라, 아마추어 천문가인 독일의 한 농부였다. 그는 성탄 전야에 망원경을 들여다보다가 물고기자리 근처에서 빛나는 한 점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로써 이 혜성이 태양을 끼고 도는 하나의 천체임이 증명되었고, 핼리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핼리 혜성이라고 이름 붙였다. 가장 최근에 핼리 혜성이 나타난 해는 1986년이었고, 다음 방문은 2061년으로 예약되어 있다. 40년 이상이나 남았으니 못 볼 사람도 많겠다.
혜성은 크게 머리와 꼬리로 구분된다. 머리는 다시 안쪽의 핵과, 핵을 둘러싸고 있는 코마로 나누어진다. 핵이 탄소와 암모니아, 메탄 등이 뭉쳐진 얼음덩어리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힌 사람은 1950년 하버드 대학의 천문학자 프레드 위플(1906~2004)이었다. 그는 혜성을 ‘더러운 눈뭉치’라 표현했다. 혜성의 정체가 제대로 알려진 것은 반세기 남짓밖에 되지 않은 셈이다.
혜성의 물질에는 휘발성 기체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래서 혜성이 태양계 내로 진입할수록 태양 에너지를 받아 표면의 기체들이 증발하고 부서지면서 꼬리가 생긴다.
혜성의 핵을 둘러싼 코마는 태양열로 인해 핵에서 뿜어나오는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것으로, 혜성이 대개 목성 궤도에 다가서는 7AU 정도 거리가 되면 코마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혜성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부분이 햇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핵의 크기가 보통 15km정도인 데 반해, 코마의 범위는 보통 지름 2만~20만km 정도로 목성 크기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구-달까지 거리의 3배나 되는 100만km를 넘는 것도 있다.
혜성의 꼬리는 코마의 물질들이 태양풍의 압력에 의해 뒤로 밀려 나서 생기는 것이다. 이 황백색을 띤 꼬리는 태양과 반대 방향으로 넓고 휘어진 모습으로 생기는데, 태양에 다가갈수록 길이가 길어진다. 꼬리가 긴 경우에는 태양에서 지구까지 거리의 2배만큼 긴 것도 있다니, 참으로 장관이 아닐 수 없겠다.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면 두 개의 꼬리가 생기기도 하는데, 앞에서 말한 먼지 꼬리 외에 가스 꼬리 또는 이온 꼬리라고 불리는 것이 생긴 것이다. 태양 반대쪽으로 길고 좁게 뻗는 가스 꼬리는 이온들이 희박하여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사진을 찍어보면 푸른색을 띤 꼬리가 길게 뻗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핼리 혜성처럼 태양계 내에 불잡혀 기다란 타원궤도를 가지고 주기적으로 태양을 도는 화성을 주기 혜성이라 한다. 이에 반해 태양에 딱 한 번만 접근하고는 태양계를 벗어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혜성이 있는데, 이를 비주기 혜성이라 한다. 또 주기 혜성은 200년 이하의 주기를 가지는 단주기 혜성과 200년 이상에서 수십만 년에 이르는 주기를 가진 장주기 혜성으로 나누어진다. 이렇게 다른 이유는 두 가지 혜성이 서로 고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혜성의 고향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기원을 알아야 한다. 혜성은 태양계 초기에 행성과 위성들이 만들어지고 남은 찌꺼기이기 때문에 태양계만큼이나 오래된 천체다. 이 찌꺼기들이 해왕성 너머 30~50AU 공간에 납작한 원반 모양으로 퍼져 있는데, 이것이 카이퍼 띠다.
암석과 얼음덩어리로 이루어진 3만 5천 개의 소행성들이 띠를 이루어 태양 둘레를 돌고 있는 카이퍼 띠는 단주기 혜성의 고향이다. 여기에 떠돌고 있던 것들이 다른 천체들의 영향으로 자리를 벗어나 태양계 안으로 밀려들어온 것이 바로 혜성인 것이다.
장주기 혜성의 고향은 그보다 훨씬 멀리, 5만~15만AU 가량 떨어진 오르트 구름이다. 지름 약 2광년으로, 거대한 둥근 공처럼 태양계를 둘러싸고 있는 오르트 구름은 수천억 개를 헤아리는 혜성의 핵들로 이루어져 있다.
탄소가 섞인 얼음덩어리인 이 핵들이 가까운 항성이나 은하들의 중력으로 이탈하여 태양계 안쪽으로 튕겨들어 장주기 혜성이 된다. 이 혜성은 온도가 매우 낮은 태양계 바깥쪽에 있었기 때문에 태양계가 탄생할 때의 물질과 상태를 수십억 년 동안 그대로 지니고 있는 만큼 태양계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태양계 화석'이라 할 수 있다.
단주기 혜성의 경우, 태양에서 목성과 해왕성 사이를 타원궤도를 그리며 움직인다. 태양계 내의 천체가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의 거리를 원일점, 가장 가까이 있을 때의 거리를 근일점이라 한다.
우주 속에 영원한 존재가 어디 있을까마는, 혜성의 경우는 더욱 극적이다. 태양의 인력에 이끌려 태양계 안으로 들어온 혜성들은 각기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데, 태양과 행성들의 인력에 따라 궤도가 달라져, 어떤 것은 태양계 밖으로 밀려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우주의 미아가 되거나, 또 어떤 것은 행성의 강한 인력으로 쪼개지기도 한다.
개중에는 태양이나 행성에 충돌하여 최후를 맞는 경우도 있다. 슈메이커-레비9 혜성이 여러 조각으로 깨어진 후 목성에 충돌한 것이 그 좋은 예다. 1994년 7월 16일, 21개로 쪼개진 조각들이 목성의 남반구에 충돌했는데, A조각을 필두로 목성과 충돌하기 시작해 그 충돌은 7월 22일까지 계속되었다.
20세기에 나타난 혜성들 중에서 가장 밝았던 혜성은 헤일-밥이다. 엘런 헤일과 토마스 밥이 1995년 7월 23일에 발견한 이 혜성은 18개월 동안 맨눈으로도 관측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헤일-밥 혜성처럼 혜성은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게 관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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